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(문단 편집) === 개별적인 전쟁 수행 === [[대본영]]이 있었으나 합동사령부 개념은 아니다. (대본영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) 이 대본영조차도 대본영육군명령과 대본영해군명령이 따로 존재했다. 원칙상으로는 [[천황]]이 양군을 통제하는 [[최고사령관]]의 역할을 수행하지만, 천황은 법률상으로는 대원수로서 군의 통수자이자 총사령관으로 절대적인 권리가 보장되나 정치적 관례상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따로 놀 수밖에 없다. 이른바 시라스(知らす) 개념이다.[* 시라스는 뜻이 굉장히 애매모호한데, 덕으로 다스린다, 모범으로서 다스린다 같은 뜻이 있다. 굳이 가져오자면 '무위지치(無爲之治)'와 비슷한 개념.] 이 상황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원로들이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인데, '헌법은 만들어주지만 그 안에서도 덴노가 절대 권력자다→ 그런데 덴노는 우리가 하자고 하면 다 허락해 준다→ 우리가 절대 권력자다' 이런 논리 전개다.[* 기업에서도 회장·사장의 직속 부서들도 이런 행동을 자주 일삼는다. 다만 한 기업의 사장·회장 정도 되면 권위나 권력을 손에 넣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각되면 당연히 피의 숙청을 거치게 되겠지만.] [[대일본제국 헌법|일본제국헌법]]의 후진성이 덴노가 실질적으로는 입헌군주처럼 행동했음에도 엄연히 문제의 근원인 이유다. 그리고 전술했듯 원로가 사라지고 각자 덴노에게 친견·상주하면서 각자 자기 영역에선 절대 권력자가 되고 통일성은 대폭발했다. 설령 개입한다고 해도 일국의 국가원수만이 각 군의 대립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도 역시 엄청나게 비효율적인데다 중재에 막대한 시간이 소모되면서 동시에 통수권자의 피로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. 애초에 국가기관이 생겨난 것 자체가 한 사람의 독재자가 모든 일을 찾아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. 일본 정부나 뜻이 있는 군 인사들도 이런 삽질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고 천황 대신 실질적으로 대본영을 총지휘할 수 있는 수장을 만들려고 했다. 이를 위해 대본영 총장과 부총장을 만들어 육해군이 교대로 맡는 방안이 있었으나 체제 유지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[* 사실상 이 대본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세의 [[막부]]와 본질적인 의미에선 똑같기 때문이다. 막부는 본래 원정을 나간 군대의 본부 막사를 뜻하는 말이니 대본영과 말만 다를뿐 유사한 기능과 성격이었고, 그 막사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최고 수장이 [[쇼군]], 즉 정이대장군이라 하는 최고지휘관이었다. 하지만 무사들이 정치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군사적 의미가 퇴색되고 정치적인 집단과 그 집단을 지배하는 상징적 존재로 의미가 바뀌었고,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천황이 아닌 쇼군이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. 그랬던 것이 메이지 덴노 때 와서야 겨우 [[대정봉환]]이 이루어지면서 천황중심의 국가체제로 복귀하였는데, 이 현대판 막부인 대본영을 이끄는 수장은 결국 현대판 쇼군과 다를 바가 없게 되니 과거의 트라우마를 고려한다면 천황 및 천황제 유지를 위해선 대본영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장을 뽑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용인하기 힘들었다.] 각각 상대편이 자신을 지휘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양측의 반대가 심해 이뤄질 수 없었다. 더욱 안 좋은 점은 전체적인 작전을 망쳐도 자군의 손해를 극히 피하려고 했다는 점이다. 이보다 더 악질적인 건, [[대본영발표#s-2|진 전투도 상대방에게 알려지면 망신당할까(=발언권이 약화될까) 두려워서 전과를 왜곡해서 발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.]] 예로 [[윌리엄 홀시]] 제독의 "침몰당했다는 제3함대는 현재 해저에서 무사히 인양되어 적을 향해 급속 퇴각중"이라는 비아냥으로 유명한 [[대만 항공전]] 같이. 육군이 주축이 된 [[과달카날 전역|과달카날 전투]]에서 해군은 자신들의 함정과 전투기를 아끼기 위해 육군을 지원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으며, 빛나는 전공이라고 할 수 없는 수송선단의 보호보다는 적의 전투함만을 추격하여 섬멸하는 데에만 주력하면서 한동안 일본군이 제해권을 장악했음에도 과달카날에서 벌어지는 지상전에는 미미한 영향밖에 끼칠 수 없었다. 심지어 해군은 '육군 니들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냐. 수송 문제는 너희가 좀 알아서 하라'며[* 함대결전사상에 쩔어있던 일본 해군으로서는 자신들의 존재의의는 전투함 격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.] 불만을 제기했고, 이로 인해 육군 측에서 육군 전용 수송용 잠수함을 만들게 되니 이것이 바로 [[삼식잠항수송정]]이다. 아래 협동전투 항목에서도 언급되지만 정작 어이없는 사실은 과달카날 전투가 벌어진 원인은 해군이 제공했다는 것이다. 해군이 과달카날에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이게 완성되면 위험하다[* 만에 하나 과달카날을 놔두면 오스트레일리아-뉴질랜드가 연합국으로부터 유리되면서 고립되기 때문이다.]는 미군의 판단으로 시작된 것이다. 반면 [[일본군]] 육군은 어떻게든지 [[중일전쟁]]을 끝내기 위해서 중국 대륙에 힘을 쓰고 있었던 터라 과달카날에 병력을 줄 수가 없었다. 심지어 과달카날 전투 문서를 보면 일본군 육군은 해군이 과달카날의 기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알렸을 때 해군이 비행장을 만들었으니, 그건 그쪽 소관이고 우리 알 바 아니라며 지원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